넷째 재앙 – 파리 재앙
한양떼 교회, 2021년 12월 5일, 주일 오전 예배 설교
출 8:20~32
넷째 재앙 – 파리 재앙
하나님께서 주의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내리신 10가지 재앙 중 네 번째 재앙입니다. 그것은 파리를 보내심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파리 떼‘라고 하는 것은 히브리어로 어떤 때, 무리를 나타낸다고도 합니다. 옛 문헌에서는 ‘모기 때’라고 하고 ‘개파리 때’, 또는 유대인들은 ‘해로운 동물들의 무리’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에 있어서는 해로운 곤충의 때로 표현되어 있고 직접적으로는 해로운 ‘파리 떼’로 해석합니다.
파리로 해석되어지는 것이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제붑’이라는 것과 ‘아로브’입니다.
먼저, ‘제붑’은 대개 집파리를 가리키는데, 사람이나 동물의 배설물 부패한 동식물을 먹으며 바이러스를 온 몸에 묻혀서 전염병을 옮기는 불길한 곤충입니다. 크기는 말벌만한 말파리도 있고 가축뿐 아니라 사람에게도 괴로움은 주는 존재로서 침략자들을 나타내는 비유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신약성경에서 나타나고 있는 파리대왕을 나타내는 ‘파리 신’인 ‘바알제붑’(귀신의 왕)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다음은 ‘아로브’라는 말로서 ‘쇠파리’(swarm, warble fly, gadfly)로 표현됩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나고 있는 파리를 의미합니다. 이 파리를 소의 배설물에서 주로 자라며 사람과 가축의 혈관이나 신체에 기생하며 피를 빨아먹고 몸의 기관을 파괴하는 무서운 곤충입니다.
본문에 나타나고 있는 이 ‘아로브’라고 하는 파리 떼를 보내심으로 재앙을 내리셨는데,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나타내심은 무엇인지 살펴받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입니다.
20절에서 24절까지의 말씀에서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셔서 바로가 물 있는 곳에 나올 때에 일러 말하라고 하시는데, 여호와께서 내 백성을 보내라 그러면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라고 말하고 만일 그렇지 않으면 파리 때를 보내겠다고 하시고, 그 날에 고센 땅을 구별하여 그곳에는 파리가 없게 하여 백성을 구별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하신대로 행하시매 파리 때로 그 땅이 황폐하였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25절에서 32절까지의 말씀에서는 모세와 바로의 대화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로가 모세를 불러 타협하는 중심을 드러냈습니다. 처음에는 그 자신의 통치하는 땅에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라고 합니다. 이에 모세는 사흘 길 광야로 들어가 여호와의 명령대로 하려고 한다 하자, 바로는 두 번째로 타협적 언급을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리니 광야에서 제사를 드리되 너무 멀리 가지 말라는 것과 자신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합니다. 이에 모세는 기도하고 파리떼는 바로와 신하와 백성에게서 떠나니 바로가 완강하게 그 백성을 보내지 않음이 기록되었습니다.
이에 두 가지 소주제로 말씀을 더 살펴 증거하겠습니다.
1. ‘내 백성과 네 백성을 구별하리니’, 2. ‘너무 멀리는 가지 말라’
‘내 백성과 네 백성을 구별하리니’
주의 백성들이 거주하는 고센 땅을 구별한다는 것과 그 땅에서 ’그 구별하시는 자‘가 여호와인줄 알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시편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기름 부음 받은 자를 구원하시는 줄 이제 내가 아노니 그의 오른손의 구원하는 힘으로 그의 거룩한 하늘에서 그에게 응답하시리로다 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시 20:6~7)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구원하시는 줄 알게 하심에 대한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여호와의 이름을 자랑한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출애굽하고 난 다음에 부른 이스라엘의 찬송에는 이런 찬송의 내용이 있습니다.
‘여호와는 용사시니 여호와는 그의 이름이시로다’(출 15:3)
시편에 나타난 주의 정하심이 나타나는 것을 깨달은 것과 출애굽 역사에서 깨달은 찬송이 연결될 수 있는 것은 경험적 완성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신실성이 각 시대 정하신 때에 알게 하심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23절에 나타난 구별한다는 히브리어는 ‘프도트 또는 프두트’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구별 구원’ 또한 ‘분할 구출 구속’(redemption, division)을 말합니다.
분리라는 개념, ‘떼어놓다’는 개념으로서 다른 말은 ‘카도쉬’라는 말입니다. 이는 ‘거룩’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위한 것으로, 분리적 개념을 말씀하심에서, 새겨서 읽을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나타내시기 위해, 주의 구속하심으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나타내시고자 하심이, 본문에 백성을 구별하심(‘프도트 또는 프두트’로 표현‘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2. ‘너무 멀리는 가지 말라’
두 번째 주제는 ‘너무 멀리는 가지 말라’입니다. 이 말은 28절 말씀입니다.
바로가 모세에게 한 말입니다. 사실 바로와 모세는 서로를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자들입니다. 모세는 애굽의 학문을 다 배우고 능통했고, 그런 또 같은 절차를 밟은 바로는 모세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는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차이는 바로는 정치적으로 그 사태를 수습하려고 했고, 정치저 담판에 들어와 있지만, 모세는 신앙적 입장에서 재해석하도록 권면하고 있는 차이일 뿐입니다.
바로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너무 멀리 가면 그들을 데려 오거나 통치적 힘을 나타내기 어렵다는 정치적 입장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모세가 애굽의 왕자였을 때에, 이스라엘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바로도 이스라엘의 지금 행하고자 하는 것도 이해했던 것입니다.
즉 너무 멀리 가버리면, 자신의 나라와 분리되어지고 그 분리되어진 가운데서 그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의식하는 ‘거룩’(카도쉬)라는 것으로 자신들의 정당화로 이어질 것을 감안해서, 그 찬양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거룩하게 하심을 부정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너무 멀리가지 말라’라는 말의 의미로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에 모세는 29절 말씀에 ‘다시 거짓을 행하지 마소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미 하나님의 말씀에서 그가 거짓을 도모하고 있다는 것을 또한 그의 강퍅하게 됨이 예언되어져 있다는 것을 주의 말씀하심에서 이미 알고 있는 상황입니다,
모세는 바로의 ‘너무 멀리 가지는 말라’라는 그의 말이 ‘하나님의 구별하여 분리하는 가운데서 하나님의 거룩성을 나타내심에 따른 구원’을 부인하고자 하는 것을 알면서도, 주의 뜻이 이루어짐을 기억하고, 그를 불쌍히 여기는 중심으로 거짓을 행하지 말기를 호소하고 있습니다.
앞서 나타난 이의 재앙에서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구원을 위한 회개의 자리를 말씀하시는 것으로 그 회개를 말씀하시고 구원하시는 것은 하나님 여호와밖에 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애굽의 술사들도 따라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에 비하여 오늘 본문의 말씀은 그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자기 이름을 위해 그 거룩하심을 나타내심을 위해 자기 백성들을 거룩하게 하시는 분이시며 이는 자기의 정하신 뜻하심의 신실하심을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을 이끌어 내라”(사 43:7~8)
이것이 주의 백성을 주의 뜻하심의 때에 다른 백성과 분별하여 내심의 있어서 하나님의 진실성과 신실성을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거룩함’이라고 하는 것은, 구약에서는 분리적 개념에서 ‘카도쉬’의 개념, 즉 거룩함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신약에서는 ‘하기아조, 하기오스’라는 ‘받혀진, 받으신 바됨’에서 거룩함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요 10:30) 하신 예수님의 뜻하심을 기억할 때에, 구약과 신약의 거룩함은 연결되며 그야말로 구별되어진 가운데서 그 연속성이 있습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주의 양자로 받으신 바된 자들이 주의 거룩함을 나타낸다는 사실과 주의 백성으로 구별하신다는 것 그로 인해 하나님께서 거룩히 여김을 받으신다는 것이 세상이 부인하고 싶어한다고 해도 분명한 진리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애굽에 내리신 심판으로서의 재앙 네 번째를 살펴보면서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거룩함을 찬송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어떤 분리주의적인 개념에서 비로소 남다른 의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서도 주의 받으신 바 된, 주의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회개케 하시고 믿음에 따른 그 받으심에서 주시는 의를 의지하여서 삶의 정결함을 위해 힘써야 할 것입니다.
성도들의 거룩함에 대한 여러 이견을 보인다고 하여도 주의 거룩하게 하시는 그 의를 따라서 성도의 길을 기뻐하고 찬송하며, 다른 이들에게 그 성립될 수 없는 말들에서 벗어나 주님께 나올 수 있도록 권면하시는 가운데 그들도 주님께로 인도하시는 귀한 은혜가 저와 여러분 그리고 우리 한양떼 교회와 우리 성도들 위에 있으시기를 주 예수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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